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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영화는 처음이었다. 유명한 작품들, 주제의식이 비슷하다고 알려진 몇 작품이 있는 것은 알고 있었는데, 일단 브로커 보고 나서 차차 감상하는 것으로 하고...
개봉 당일 저녁 먹고 나서 여유롭게 동네 영화관을 찾았다.

스포일러는 최대한 자제하면서...
어두운 장면이 많다. 사건이나 감정의 어두움도 그렇고, 화면의 밝기 자체도 그렇다. 그 밝기의 변화를 참 잘 쓴다고 느꼈다. 보고 나서 계속 기억나는 장면인데, 서울 가는 기차 장면에서 터널을 통과하며 나오는 밝기 변화와 그 위에 얹힌 인물들의 대화가 참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딱히 시네필도 아니고, 영화를 보면서 감정 변화를 많이 느끼지도 않는 편이다. 일단 어른들의 대화에서는 크게 감정이 요동치지 않았는데 결국 나한테 결정타를 날린 것은 열 살 임승수 배우가 맡은 해진이 툭툭 던지는 말들이었고... 다른 리뷰들 보니 그게 고레에다 감독의 스타일이라고 하더라는.

해진 역 임승수 군의 귀여움은 여기서 더 감상해 보도록 하자.

배우 이지은의 첫 상업영화다. 그늘이 있는 캐릭터를 참 잘 한다고 드라마 할 때부터 생각했었는데(여전히 '나의 아저씨'는 다 보지 못했다), 이번 역시 그렇다. 딱히 유애나로서 하는 소리는 아닌데, 진짜 인생 한 3회차쯤 되나 싶은 놀라운 눈빛과 여러 감정들이 보였다. 강동원 배우와의 연기 합은 단순한 눈호강을 한참 뛰어넘고 있다.


편하게 킬링타임으로 보는 영화는 확실히 아닌 것 같은데, 배두나 배우가 맡은 형사 수진의 대사들이 영화 끝나고도 계속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다. 개인적으로는 속에서 계속 유물론적인/계급에 관한 퍽 먹물스러운 질문, 정상가족 이데올로기 관련해서 이 영화가 가진 인물들의 복합적인 스탠스에 대한 질문 같은 게 스멀스멀 기어나오는데 한 마디씩 치고 들어오면서 '너 뭐 돼?!'를 외치고 있다고 해야 하려나.

'브로커'는 이렇게 질문을 던지는 것을 이야기의 무게에 잠시 망설여지게 만들곤 했다. 아무튼 영화가 그 모든 얘기를 할 수도 없고 그러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정도로 이해하고, 여기에 대해서 생각을 좀 더 정리해 보려면 영화를 다시 한 번 더 봐야겠다는 그런 생각을 했다.
(6.19 2회차 관람)
이런 생각이 크게 바뀌진 않았고, 그래서 어느 정도 열어 둔 엔딩이 납득 가능한 것 같다.
이번 관람에선 송강호 배우가 대사와 그 사이를 채워가는 것을 좀 더 유심히 봤다. 대단히 디테일이 섬세하다고 느껴졌다.  


이러한 운명의 캐릭터들로 가득한 이야기를 그리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애가 시선에서 뚝뚝 묻어나는 고레에다 감독도 대단히 강한 사람이다 싶었다. 진심이다. 전작들에 비해 아쉽다는 평도 꽤 있는 것 같은데(무슨 얘기 하는 지는 알 것 같다. 인물 간의 서사 쌓이는 과정이 이 러닝타임 안에 충분하진 않은 느낌이 좀 들기도 했기 때문에), 일단 나의 감상은 '브로커'로 그의 작품을 처음 만난 입장에서 하는 말이다.


(로 대 웨이드가 뒤집어질 판에다 한국 역시 수구 반동적 정권이 들어서 시대를 역행할 게 뻔한 이 시국에 이 영화가 관객들 앞에 놓이는 게 괜찮은지...?하는 질문도 안 드는 것은 아니었다. 곡해하려고 드는 이들이 있다면 자기모순으로 스텝이 막 꼬이며 꼴사납겠구나 싶은 정도. 개봉 첫 주 주말에 누가 하라는 일은 안 하고 보러 간다고 해서 써 두는 문장이다.)

덧붙임. '여성가족부 폐지' 7글자 공약한 이가 이런 말을 얹는다. 생각이 없거나, 양심이 없거나, 둘 다거나. 어쨌든 매우 모욕적으로 들린다. 영화가 그리는 이야기와 던지는 질문에 담긴 함의를 생각하고 정치와 사회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윤석열에게서 역시 나오지 않는다. 아니 그런 게 나올 리가 없다. 그의 수준이 그렇고, 우리나라에서 '보수'라고 하는 이들은 대체로 이런 이야기에서 정치와 사회의 책무, 시스템에 관한 생각을 떠올릴 수조차 없는 수준으로 공적 마인드가 없는 것이다.

아, 등장인물들의 범죄가 어쩌고저쩌고 안 해서 다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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