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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질 결심 두 번 보고 온 후기

내가 미성년자일 때 나온 박찬욱 작품들은 거의 예외없이 청불이라서, '아가씨'를 극장에서 안 본 나에게는 사실상 이 작품이 박찬욱 영화를 극장에서 처음 만나는 것이었다.

대비를 이루는 것들, 그러면서도 그 경계에서 헷갈리는 성질을 가진 것들을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전에 리뷰한 '브로커'가 사회적인 얘기로 생각에 잠기게 만들었다면, '헤어질 결심'은 그보다 좀 더 영화 자체를 뜯어보고 감정선 - 형사 장해준이 붕괴하는 것(이것을 박해일의 얼굴과 몸짓으로 보니 정말로...감사합니다. 배운 변태 박찬욱이 '비누냄새 나는 변태'를 만나서 벌어지는 일. 즐겁지 아니한가...), 그리고 '꼿꼿한' 송서래의 엇갈리는 감정 -을 따라가는 즐거움을 크게 주는 것 같다. 15세 관람가, 미묘한 표현으로 가득한 영화에 이렇게 고자극 즐거움을 숨겨놓다니..!


의외로 마지막 학기 다니면서 들은 수업 내용들을 좀 발견할 수 있었는데, (스포주의) 살인사건들이 계속 나오다 보니 수업에서 다뤘던 루이스 부뉴엘의 "안달루시아의 개"에서 묘사되는 눈동자나 초현실주의에 관한 조르주 바타유의 글들이 첫 관람 때 계속 맴돌았다. 성적 잘 나왔고 재밌게 들었는데 의외의 곳에서 효용을 추가적으로 발휘하는 수업...ㅋㅋㅋ

이외에도 주제가로 쓰인 정훈희의 '안개', 안개 자욱한 이포에서 김승옥의 '무진기행'도 금방 떠올랐다.


첫 관람 후 이번에도 이동진 평론가 영상을 찾았다.


나는 왜 박찬욱의 유머를 좋아하는가.

두 번 봤는데 두 번 다 계속 러닝타임 내내 박찬욱이 심어놓은 포인트마다 피식피식 웃으면서 봤다. 다른 많은 사람들이 웃진 않는 것 같은데 아무튼 나에게는 박찬욱이 툭툭 내놓는 언어유희를 동반한 유머들이 참 좋다. 이것은 '아재개그'라고 쉽게 부를 만 한 것이 아닌 굉장히 세련된 말장난이라고 생각한다... 대화 맥락을 깨지 않으면서 아주 의미가 없는 것도 아니고. 슬쩍 웃음이 터지는 것에 흐뭇해할 감독의 얼굴이 잠깐 떠오르다가.

두 번째 볼 때 더 재미있었다. 장치로 쓰인 것들, 복선들을 먼저 알고 봤을 때 감탄을 약간 더해서.

애플은 꼭 이 영화 클립 사서 광고에 써줬으면 좋겠다.

트위터에서 본 소름돋는 것.

138분, 138층 높이, 그리고...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13장 8절. "아무에게도 빚을 지지 마십시오.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것은 예외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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