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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latan Ibrahimovic’s pursuit of personal capital reaches new level | Zlatan Ibrahimovic | The Guardian

지난 포스팅에서 이어서...

Zlatan Ibrahimovic’s pursuit of personal capital reaches new level | Jonathan Liew

The biggest compliment you can pay the veteran Milan striker is that sometimes he is almost as good as he says he is

www.theguardian.com

 

 (번역) 즐라탄의 개인적 자본 추구는 새로운 경지에 다다랐다

Guardian, Jonathan Liew / (의역 및 오역이 다수 포함되어 있을 수 있습니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는 '자신이 잘 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는데, 아마 자기 자신에게 해야 할 말이 아닌가 싶다. 즐라탄은 현대 축구 최고의 선수들 중에서도 유별난 구석이 있는데, 이는 그의 필드 위 업적보다도 그의 입에서 나오는 에피소드들 때문인 부분이 있다. 아마 축구선수 즐라탄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은 그가 그 자신을 평가하는 것만큼이나 훌륭한 선수였던 시절이 있었다는 말일 것이다. 17년 전 아약스 시절의 그 유명한 단독 돌파 득점이나, 잉글랜드와의 친선경기에서 라이언 쇼크로스를 압도했던 것, LA 갤럭시 데뷔전에서 빈 골대에 넣은 골. 모두 잊지 못할 찬란한 기억들이다. 그뿐이다. 그가 자신이 잘 하는 것에서 주제넘게 벗어나지 않으려고 하는 데 진심이라면, 아마도 그 분야는 축구 대신 자신이 독보적인 분야인 '3인칭으로 자화자찬하기'가 아닐까. 

즐라탄은 최근 인터뷰에서 르브론 제임스에 관한 질문을 받자 "저는 그 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이 정치 얘기를 하는 건 싫어요. 잘 하는 것이나 집중해야죠. 저는 축구를 가장 잘 하기 때문에 축구를 하고, 정치인은 아니거든요. 제가 정치인이라면 정치를 하고 있겠죠."라고 답변했다.

즐라탄의 말은 최소한의 어떤 검토도 없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스포츠와 정치는 처음부터 서로 얽혀 있는 관계였다. 초창기 스포츠는 통제의 수단이었고, 변화의 동력이었으며, 권력의 표출이자 저항의 표현이기도 했다. 마커스 래시포드, 콜린 캐퍼닉, 오사카 나오미, 르브론 제임스까지, '운동선수이자 활동가'인 이들의 존재감은 그 어느 때보다 우리 문화에 뿌리내리고 있다.

우리 모두 아는 얘기다. 즐라탄 역시 그렇다. 그는 역대 운동선수 중 가장 좋아하는 이로 무하마드 알리를 꼽으며 "그가 링 안팎에서 한 일들"을 이유로 들었다. 어쩌면 이 역시 즐라탄이 '선동가'이자 '명언 제조기', '또라이들의 또라이'(...)로 자신을 브랜딩하는 것일지 모른다. 행간을 읽어내자면, 대상과 타이밍이 우연이 아닌 것 같은 그의 말들에서 아마 어떤 근원적인 욕망을 엿볼 수도 있겠다.

그래서, 즐라탄은 왜 이런 입장에 섰을까? 하필이면 왜 지금일까? 첫 질문은 아마 답하기 쉬울 것 같다. 말뫼에서의 유년기로 시작되는 "즐라탄 신화"는 힘과 명성, 부 등 개인의 자본을 추구한 이야기다. 그가 유럽 축구계에서 입지전적인 커리어를 쌓으며 만들어온 세계관은 "자신을 믿는다면 해낼 수 있다", "모든 게 나 하기 달렸다"같은 '강한 자기확신과 노력을 통해 자신의 운명을 개척한 유일한 '사나이'의 그것'이다.

그래서 그의 원더골들이나, 여자 선수들에 비해 남자 선수들이 더 많은 관심을 받는 게 당연하다고 했던 말이나, 경기 중 상대 선수를 때린 것, 만 서른아홉의 나이에도 뛰고 있는 것, 이 모든 것이 개인이 자신이 원히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그의 강한 신념에서 왔다고 할 수 있다. 그가 PSG에서 뛸 당시, 그는 그가 받던 25만 유로의 고액 주급에 대해 "시장에서 결정하는 것"이라며 오히려 프랑스가 고소득자들에게 세금을 많이 부과하는 것에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면서 구단주인 카타르 왕실의 도덕적인 문제엔 별 관심 없다고 했다. ("(카타르엔) 서너 번 가 봤는데 꽤 좋더라"라고 덧붙였다.) 우리는 그의 발언들에서 읽어낼 수 있는 것을 자유지상주의, 개인의 책임을 신성시하는 믿음, 혹은 소외감을 느끼는 십 대 소년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은 좋든 싫든 간에 태생이 정치적이다. 즐라탄이 쌓아 온 그의 서사, 그의 세계관과는 반대로, 흑인 인권을 위한 운동은 전세계적이고 광범위한 사회 운동으로 승패의 서사가 뚜렷한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가 이러한 대의에 반동적인 사람이라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이 운동들은 즐라탄이 모든 것을 정복하는 승자, 주인공이 되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전세계적인 기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목소리를 내 왔고, 그 자신이 유년기에 인종차별 피해를 겪은 즐라탄은 이 논의에 참여하고, 다른 사람들과 연대해 좀 더 큰 역할을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그에게 자신보다 좀 더 중요하고 큰 무언가의 일부가 되는 것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가 그 자신보다 큰 무엇이 존재한다고 받아들일 지는 분명하지 않다. 


즐라탄의 나이가 마흔에 가까워짐과 함께, 새로운 영웅들이 등장하고 있다. 지역 라이벌 팀 인테르의 로멜루 루카쿠는 자신이 밀라노의 새로운 왕이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게임과 룰이 변했다. 스타 운동선수들에게 우리가 기대하는 모습 역시 바뀌었다. 이제 전 세계적으로 운동선수들은 자신의 영향력을 활용해 세상의 불의한 일들에 사람들이 주목하게 만들고, 변화를 지지하며, 그것을 통해 대단한 명성을 얻고 존경받는다. 이브라히모비치가 그토록 갈망하는, 광범위하게 범접할 수 없는 크기의 유산을 남기는 '위대함'의 조건이 달라졌다는 얘기다. 


아마 그래서 즐라탄이 르브론이나 스테판 커리 같은, 운동선수이자 활동가인 사람들을 본다면 그 역시 그가 가지 않은 길, 그로 인해  따뜻한 마음과 그에 따르는 찬사들을 즐라탄이 아닌 르브론이나 커리 같은 선수들이 받고 있는 것으로부터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바로 즐라탄이 경기장 안에서 공과 함께 이뤄낸 업적만으로는 절대 닿을 수 없는 위대함이다.


즐라탄과 르브론은 비록 한 종목에서 최고 레벨에 다다른 슈퍼스타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서로 다른 배경에서 살아왔고, 이는 아마 그들이 각각 자신이 속한 사회와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에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이 글에서 즐라탄의 세계관과 그 서사구조를 짚은 것이 그런 맥락에서라고 생각한다. 다소 도발적으로 들리지만 설득력 있는 설명이다.

자의식이 비대한 독특한 캐릭터의 영웅이 그의 세계관과 서사구조가 맞아떨어지지 않는 상황을 만나 불화하는 것까지도 참 즐라탄답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그가 그동안 쌓아온 이미지를 감안할 때 그가 이번에 비판한 제임스와 같은 맥락에서 존경받는 영웅이 될 것을 기대하지는 않았고, 운동선수이자 활동가로서 영웅이 된 다른 선수들에게 딱히 좋은 감정을 갖지 않는 것은 알겠는데... 최근 그의 언행은 그답지 않게 쿨하지 못하다. 그것은 쿨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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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latan's attack on LeBron James echoes the hypocrisy of the American right | Etan Thomas | Sport | The Guardian

르브론 제임스에 대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공격은 미국 우익의 위선과 일맥상통한다.

Etan Thomas는 전 NBA 선수이자 사회 운동가, 연설가다. 

발번역과 의역이 많을 수 있습니다

 

 

르브론이 사회 이슈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데 대한 즐라탄의 비판은 운동선수들의 '목소리 내기'가  '보수'들이 '허락하는' 안전한 이슈에 대해서만 가능하다는, 흔한 폭스뉴스식 이중잣대와 같다. 

흑인 역사의 달의 마지막 즈음, 이번 시즌 밀란의 부활을 이끌고 있는 스웨덴의 슈퍼스타 공격수 즐라탄은 르브론 제임스가 자신의 세계적 영향력을 미국의 사회 문제들을 알리고 변화를 촉구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을 비판했다. 르브론은 NBA 선수들 중 경찰 폭력, 인종차별, 불평등에 맞서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앞장서서 발언하는 선수다. 이는 그를 위대한 운동선수이면서 활동가인 빌 러셀, 무하마드 알리, 카림 압둘자바, 존 카를로스, 토미 스미스, 마흐무드 압둘라우프, 크레이그 호지스와 콜린 캐퍼닉과 같은 반열에 놓을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즐라탄은 이것이 르브론이 할 일이 아니라고 믿고 있다.

스웨덴 매체 '디스커버리+'와의 인터뷰에서 즐라탄은 자신의 종목을 넘어서 사회 이슈에 관해 의견을 개진하는 데 자신의 지위와 영향력을 활용하는 것을 비판했다. 

'저는 르브론을 좋아합니다. 그는 끝내주는 농구선수죠. 근데 저는 그 정도 위치에 있는 사람이 정치 얘기를 하는 건 싫어요. 잘 하는 것이나 집중해야죠. 저는 축구를 가장 잘 하기 때문에 축구를 하고, 정치인은 아니거든요. 제가 정치인이라면 정치를 하고 있겠죠. 이것이 유명해진 사람들이 하는 첫 번째 실수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괜히 잘못할 위험에 빠지느니 어떤 주제들에 대해서는 얘기하는 것을 피하고 잘 할 수 있는 것을 잘 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해요“

금요일 포틀랜드전 승리 후 인터뷰에서 르브론은 '절대 침묵하지 않겠다'며 받아쳤다. 그는 "잘못된 일에 절대 입 닥치고 있지 않을 겁니다. 저는 저의 배경에 대해 말하고, 평등, 사회 정의, 인종차별, 투표억압과 같이 우리 사회의 이슈들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제가 그 커뮤니티의 일원이었고, 그것을 경험했고, 그런 일들이 계속되는 것을 알고 있어요. 제가 세운 학교엔 300명이 넘는 아이들이 다니고 있고, 똑같은 일들을 겪고 있는 그 아이들에겐 목소리가 필요해요. 제가 그들의 목소리가 되고, 제가 속한 그 사회뿐 아니라 미국, 그리고 전세계에 일어나고 있는 (그런) 일들을 알리기 위해 제 영향력을 사용할 것입니다. "

거기서 멈추지 않고 르브론은 즐라탄이 스웨덴 미디어로부터 불합리한 대우를 받았고 이것이 인종차별에서 기인한다고 말했던 3년 전 '카날 플뤼스' 인터뷰를 상기시켰다.

"그는 스웨덴에서 똑같은 얘기를 했어요. 그의 성이 다른 많은 스웨덴 사람들과 달라서 차별받는 것 같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정중히 말씀드리는데, 그게 저한테 할 말은 아닌 것 같네요. 저는 제 할 일을 하고 있으니까 말이죠"

아마도 즐라탄이 LA 갤럭시에서 뛴 2년 동안 폭스뉴스를 너무 많이 봤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말은 르브론에게 "닥치고 드리블이나 해" 인종차별적 발언이라고 비판받았던 보수 성향 평론가 로라 잉그레이엄의 그것과 오버랩된다. 운동선수들이 의견을 내는 것은 '그들(보수)도 동의하는 의견을 내거나, 개인적인 것으로 치부할 수 있는 의견'일 때만 괜찮다는 얘기다. "닥치고 드리블이나 해"는 로라 잉그레이엄과 그가 대변하는 미국 우익의 민낯을 까발리는 표현이다.  이러한 이중잣대는 작년 미국 공화당 전당대회에 NFL과 대학풋볼의 레전드 허셸 워커가 연사로 초청받은 데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워커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고, 이 연설에서 트럼프가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변호했다) 그러나 운동선수들의 주장이 그들(보수우익)의 것과 배치된다면, 그때는 그저 '닥치고 드리블이나 해', 또는 즐라탄의 말을 빌리면 '잘 하는 것이나 집중해'라는 것이다. 르브론은 즐라탄이 자신의 인종차별 피해에 대해 말하는 데는 별 문제를 겪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게 위선이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말해 두자면, 르브론이 운동선수들, 활동가들과 연대해 비무장 비백인에 대한 경찰의 살인과 폭력을 종식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정치보다도 기본권 보장에 대한 요구다. 이는 인종과 국적, 출신, 배경, 종교와 직업, 지위와 무관하게 누구나 도덕적인 용기를 따라 지지할 수 있는 것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말처럼, 침묵이 곧 배신인 때가 온다. 


선수로서 즐라탄은 나 역시 꽤 좋아한다. 40대에 근접한 나이에도 빅리그, 상위권에서 통하는 실력은 프로페셔널로서의 그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한다. 꾸준히 인간계 최강을 넘봤던 그의 실력, 뿜어져 나오는 포스는 다소 자의식과잉처럼 보였어도 그런 점들을 '독특한 캐릭터'취급하며 잠시 외면할 수 있도록 해 준 것도 같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선수 르브론에 대해서는 업적과 별개로 불호에 가까운 입장이고, 홍콩 민주화 시위 국면에서 상업적인 이유로 다른 이슈에서 적극적인 그답지 않은 비겁함을 보여주기도 했다는 점도 알고 있다. 항상 그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붙을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즐라탄이 그를 비판하면서 쓴 표현들은 잘못된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르브론은 비록 선택적이고 위선적이라는 비난을 받지만 자신의 영향력과 책임을 인지하고 그 사용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적어도 그런 척이라도 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즐라탄의 말에서는 그런 점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은 제목에서 '미국'을 지워도 그대로 통할 수 있다. '~~가 허락한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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