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은 살짝 지났고, 아침에 엘프라트 공항에서 먹은 와퍼가 커서 버틸 만 하긴 했다. 팔라펠 4조각과 토마토, 소스와 빵이 나왔다.
렌틸과 병아리콩으로 만들었다고 하는데, 묘하게 한국에서 먹는 녹두빈대떡 느낌이 났다. 좀 더 바삭한 버전이다. 사실 명절음식들이 기름진 탓에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것은 싫지 않았다. 바삭바삭하게 튀겨낸 동글동글한 팔라펠과 토마토, 소스가 잘 어울렸던 것 같다. 가끔 명절 다가오면 생각나는 맛이다.
여행에서 처음으로 망한 요리. 숙소에서 요리를 했는데, 잘 드는 식칼이 없었다...... (주방은 다 구비되어 있다고 에어비앤비 설명에 있었는데...) 보기에는 아주 그럴듯하지 않은가. 좀 더 야무지게 마이야르를 일으켰어야 했다. 소고기 안심을 굽고 가지를 살짝 튀기듯 구워 샐러드와 머스터드 소스를 곁들였다. 거의 블루 레어 수준으로 익어서 먹다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였는지 기억은 안 난다. 별로 인상적이지 않았다는 뜻이다...
구운 염소젖 치즈와 샐러드
스테이크, 그리고 생선 요리. 메인 요리였다.
그리고 아이스크림을 곁들인 타르트와 크림 브륄레
Le Bourgresses. 마레 지구에 있는 레스토랑이다. 숙소와도 얼마 멀지 않았다.
친구와 저녁식사 약속. 포르투에서 산 와인 한 병 사들고 집에 놀러갔는데, 그 전에 먼저 식사부터 했다. 20유로 중반 정도의 가격에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프랑스 요리였다. 샐러드와 디저트가 아주 만족스러웠던 기억이 남아 있다.
연어 샐러드와 뵈프 부르기뇽. 부르기뇽이 궁금했기 때문에, 마레 지구 근처를 걷다가 들어갔다. 외관상 약간 갈비찜 생각도 나고... 와인향이 전체적으로 감도는 부드러운 소고기였다. 그다지 좋지 않은 리뷰들도 좀 보이는데, 적어도 나한테는 그다지 이상 없었던 것 같다.
Rambuteau가의 Terres de Cafe. 오랜만에 괜찮은 에스프레소를 즐길 수 있었다. 산미가 팍 치고 들어오는 느낌은 여행 중 쉽게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아마 그때 좀 더 관심이 있었다면 카페 투어도 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영화표 한 장 사 두고 남는 시간에 커피 즐기기 좋았다.
살짝 곁다리로 빠져서. 여행 중에 영화라니, 그것도 언어도 익숙치 않은 곳에서. 그렇지만 이 영화는 '기생충' 이었다. 칸 영화제 직후였고, 검색해보니 프랑스에서도 개봉을 했다고 한다. 한국 돌아가려면 아직 2주는 남았기 때문에 극장에서 보기 쉽지 않겠다 싶어서 이곳에서 봤다. 상영관 자체는 한국의 영화관들이 압도적으로 좋은 느낌. 여기 영화관은 학교 시청각실의 좀 큰 버전처럼 느껴졌었다.
한국사람인 나만 웃을 줄 알았던 장면도 다들 잘 웃는 것을 보니 번역도 잘 된 모양이고(그래도 '코너링'에서는 나만 빵 터졌다), 관객들도 상당히 많았다. 그 속에서 한국사람 혼자서 영화를 보다니 좀 색다른 기분. 러닝타임 내내 긴장감이 유지되기도 했고, 장르가 코미디에서 스릴러로 확 전환되는 장면에서의 이정은 배우의 소름돋는 연기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다른 장면들에서도 배우들의 열연과 연출 모두가 아주 훌륭했다.
L'As du Fallafel.
줄을 많이 서 있는 것 보니 확실히 소문난 맛집은 맞는 것 같다. 파리 최고의 팔라펠을 검색했을 때 가장 먼저 나오는 곳이다. 여러 중동 음식점이 있고 팔라펠 등을 파는데, 이쪽은 이스라엘계인 것 같다.
피타 빵 자른 것 사이에 금방 튀겨낸 팔라펠과 갖은 채소, 요거트 소스가 들어간다. 기본 팔라펠이다. 햄버거보다 훨씬 두꺼워서 먹기 썩 편한 형태는 아닌데, 어쨌든 맛있다. 케밥과 함께 유럽에서 만날 수 있는 훌륭한 (패스트)푸드 아닐까. 채소와 콩이 주재료기 때문에 확실히 다른 식사들보다 꽤 건강한 기분도 든다. 육식 대체로도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유명한 건축가인 장 누벨의 작품이다. 아라베스크 문양을 정교하게 프린트해 붙인 외관이 인상적인 건물이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무슬림, 아랍계 이민자들이 많은 대표적인 나라인데, 이들의 문화에 관한 전시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고, 건축물 자체에 대해서도 끌려서 사흘째 첫 일정으로 이곳을 선택했다.
안쪽에서 이렇게 아라베스크 패턴 사이로 빛이 들어오도록 설계외어 있다. 전반적으로는 철과 유리로 된 현대적인 건물이다.
아랍 세계의 'scope'. 주로 북아프리카와 아라비아 반도, 지중해 연안 쪽이다. 대체로 이슬람을 믿는데, 무슬림은 동남아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도 널리 믿기 때문에 아랍과 무슬림은 약간 구분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파리의 유명한 미술관들에서는 보기 힘든, 다양한 시대의 아랍권 유물들이 있다.
그리고 내가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것. 마침 아랍권의 축구에 관한 특별 전시를 하고 있었다. 프랑스 축구협회와 아랍 세계 연구소가 같이 준비한 전시라고 한다.
아랍어, 영어, 프랑스어로 적혀 있다.
2018년 월드컵에 출전한 아랍권 국가대표팀들. 왼쪽부터 이집트, 튀니지, 사우디아라비아와 모로코다. 출전 선수들 사인된 셔츠가 걸려 있다.
주요 사건들을 이렇게 연표로 만들어 놓았다. 연도 순으로 알제리의 1982년 스페인월드컵 출전, 1998년 팔레스타인의 FIFA 가입과 프랑스의 월드컵 우승(이게 왜 여기 있는지는 곧 설명할 예정이다), 2003년 바레인, 요르단, 팔레스타인의 여자축구 국가대표팀 창설, 2004년 아프리카네이션스컵 결승 최초로 아랍 국가들이 맞붙은 경기인 모로코와 튀니지의 맞대결이다.
라르비 벤바레크. 모로코 출신의 프랑스 국가대표 선수로, 마르세유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활약한 전설이다. 아랍계 선수로는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하나라고 한다.
다양한 종교가 만나고 충돌하는 레바논 베이루트를 연고로 하는 Nejmeh SC에 대한 소개.
아랍어 장식이 들어간 유니폼들. 오른쪽은 디자인의 패턴을 보아하니 90년대 초반의 아디다스 킷인 것 같고...
아랍 국가들의 국기가 걸린 계단을 쭉 올라가면...
지단을 만날 수 있다. 알제리계인 지단은 설명이 필요 없는 전설이다. 이 셔츠는 언젠가 정말 내 컬렉션에 포함시키고 싶다.
지금도 그렇지만, 프랑스 대표팀은 다양한 배경과 인종의 선수들이 모인 최고의 팀이다. 98년 월드컵을 앞두고 극우 인사의 차별적 발언을 듣기도 했는데, 우승으로 멋지게 보여줬다. 왼쪽 사진은 결승전 주장들이 주고받은 페넌트. 디디에 데샹이 둥가에게 넘겼을 그것이다.
그리고 그 데샹이 감독이 되어 2018년 월드컵에서 또다시 우승했다. 여전히 프랑스는 높은 다양성을 가진 팀이다.
레알 마드리드 시절 지네딘 지단의 모습.
아랍권 팀들 중 전통의 강호인 이집트에 대한 설명이다. 카이로는 축구 열기가 뜨겁기로 유명하다고 한다. 카이로 더비에 대한 설명이 있다.
에삼 엘하다리. 월드컵 본선에 출전한 최고령 선수(만 45세)로 기록되어 있다. 이집트 국가대표팀에서 159경기를 뛰었다. 그리고 그 옆은 모하메드 살라. 최근 몇 년 동안 가장 큰 임팩트를 남긴 선수 중 하나다. 살라의 부상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이집트가 러시아 월드컵에서 좀 더 좋은 성적을 내지 않았을까.
아랍 세계의 변화를 보여주는 단면 중 하나. 여자축구다. 여권 신장과 함께 가는 주제다.
그리고 팔레스타인에서도 축구를 즐긴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축구는 뿌리를 내린다.
팔레스타인에서의 축구.
그리고 아랍 세계가 기다리는 것은 2022년 월드컵이다. 유치 과정부터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야심찬 프로젝트다.
그리고 2019년 아시안컵에서 카타르 대표팀이 만만찮은 전력을 보여주며 한국과 일본 등 강호들을 연달아 잡고 우승했다.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다.
그리고 아랍 세계의 민주화 시위에도 한 축을 담당한 축구 팬들 이야기다. 물론 결과가 미완성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축구 서포터의 역할이 더 남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이곳이 파리에 위치해 있는만큼, PSG 얘기도 들어간다. 아랍 자본이 아낌없이 들어간 PSG의 글로벌한 확장 프로젝트에 대한 설명이다.
구글로 hidden gem을 검색하다 나왔고, 숙소에서도 멀지 않아서 방문했는데,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축구팬인 나를 상당히 만족시켰다.
노면은 분명히 젖었는데 하늘은 밝고, 또 고개를 약간만 돌리면 먹구름이 있는 참 신기하고도 변화무쌍한 날씨였다. 그만큼 여행자 입장에서는 좋지 않은 날이었다. 이것저것 돌아보고는 싶고, 많이 걸어야 할 때 이런 날씨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카페에 가만히 앉아서 밖을 바라보는 것이면 모를까.
복원 중인 노트르담 대성당이 보이고...
이 각도로 보면 또 맑다. 노트르담 대성당 앞 도로 원점도 볼 수 없이 접근이 통제되어 있었다.
시테 섬의 생트-샤펠. 성당이다. 13세기 건축물로, 성경 내용을 표현한 이 스테인드글라스가 매우 유명하다. 학창시절에 미술 교과서에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이 건물이 지어진 13세기라면 조명으로 쓸 만 한 것이라고는 초를 매다는 것 말곤 없었을텐데, 아무래도 그래서인지 전체적으로 건물 안이 쨍하게 밝진 않다. 그럴 순 없다. 하지만 스테인드글라스가 약간을 상쇄시켜 주는 느낌이랄까. 미적으로도 그렇고...
아무래도 들어오는 자연광이 좀 더 밝았다면 더 화려하게 빛이 쏟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좀 남긴 한다.
이날의 날씨는 정말이지 스펙터클했다. 15분 단위로 바뀌는 날씨와 거센 비바람에 정말 고생했던 날이다. 그래서 사진 찍을 정신도 별로 없었다... 다음 게시물은 아마도, 숙소 들어가서 옷 갈아입고 나온 다음 방문한 퐁피두 센터에서 찍은 사진이 될 것 같다.
분명히 6월 초인데, 따뜻한 옷을 들고 왔을 리가 없는데, 춥다. 빌바오에서도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추웠는데, 이건 좀 다르다. 11도 정도로 기온이 떨어졌다. 분명히 계획엔 없는 일이다. 게다가 방문할 곳이...
파리 시내를 이렇게 내려다볼 수 있는 곳, 몽파르나스 타워의 꼭대기다. 전망대 입장료는 12유로(국제학생증으로 할인)였다.
몽파르나스 역. 남부로 가는 열차들을 탈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남프랑스도 이번 여행에서 고려는 했으나 독일 찍고 중부유럽으로 넘어갈 생각이라 최종적으로는 포함되지 않았다.
높은 건물이 있는 바로 코앞에 이런 공동묘지라니. 서울 같으면 쉽게 상상하긴 어렵다.
에펠탑 저 너머로 라데팡스의 큰 건물들이 배경이 되고 있다. 어디서 바라봐도 에펠탑이 앵글 중심에 들어가면 일단 파리 같고, 예쁘다.
센 강 쪽, 루브르도 보이고 퐁피두 센터도 살짝 보이는 그런 각도다.
옷의 주름을 보면 고층 빌딩 위인 것이 그대로 보이는 것 같다. 이 해 3월, 파리 원정에서 이 색깔의 셔츠를 입은 맨유가 기적적으로 원정골 우선 원칙에 따라 8강에 진출했던 것을 기념하는 의미로 입었다(마킹은 포그바, 리그 버전. 그는 파리에서의 그 경기에 결장했다...). 의미고 뭐고 추워서 혼났다. 결국 내려가서 zara에 급히 들어가 가을철 재킷 하나를 샀다는...
이날 날씨로 인한 고생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파리에서 단 사흘의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친구도 만나고 하기 위해 열심히 돌아다녔다. 생각해보면 참 무리했다 싶기도 하고...